누가복음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듣지 아니하면.
참조 30절 주석.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영원한 진리의 분명한 진술에 의하여 감명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장 큰 이적에 의해서도 더 나은 감동을 받지 못할 것이었다. 이 비유를 말한 지 몇 주일 후에 예수는 이제까지 그들이 보았던 것보다 더 큰 증거를 요구하는 유대 지도자들의 도전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나사로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를 죽음에서 부활시켰다. 그러나 바로 그 이적은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예수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음모를 강화하도록 이끌었다(참조 요 11:47~54 주석).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지지받을 수 없는 입장을 지키기 위하여 나사로를 없애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느꼈다(참조 요 12:9, 10; 시대의 소망, 588).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구약을 거부하는 자들은 “더 큰” 빛, 심지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의 증언이라도 거부하리라고 한 예수의 말씀의 진실성을 글자 그대로 입증했다.
비록…살아나는 자.
몇 주 후에 주님은 마치 이 비유 가운데서 부자가 요청한 내용을 당신을 헐뜯고자 하는 비평가들에게 성취시켜 보여 주려는 듯이 죽음에서 나사로를 일으켰다(참조 요 11:1 주석). 그러나 예수가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 부자에게 경고한 것처럼,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여전히 믿기를 거부했다. 실제로 그 이적은 그들로 하여금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단호하게 그를 죽일 음모를 꾸미도록 자극했다(요 11:47~54).(재림교주석)
말씀과 빛을 받을 때
마음을 열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큰 이적이나 기사를 보아도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빛을 보았을 때
말씀하신 예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지금껏 살아온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간 것은 엄청난 믿음이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드라마틱하게 만나면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드라마가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어도
결코 마음을 열지 않고
예수님 죽일 궁리만 했던
유대인 지도자들처럼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이적을 봐도 꿈쩍하지 않을지 모른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내가 정신을 차리고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그것은
백퍼센트 망상일 뿐이다.
매일 주어지는 말씀과 빛에
마음을 열고 반응하지 않는다면
언제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극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변화와 성화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이르러 오지 않는다.
매일매일 평생을 걸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매일 들려주시는 말씀에
마음을 완전히 열고
순종하게 되길 소원합니다.
매일 변화되고
매일 예수님과 가까워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가족 동행들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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