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3 가난한 자는 필요를 느끼는 자
마태복음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가난한 자.
헬라어 프토코스(pto-chos). “웅크리다”, “위축되다”를 의미하는 프탓소(ptasso-)에서 파생한 말로 극심한 가난을 지칭한다(참조 막 12:42; 눅 4:18; 6:20). 여기서 프토코스는 비참한 영적 가난에 처한 자들 그리고 천국이 공급해야 할 것들에 대해 필요를 예민하게 느끼는 자들을 가리킨다(참조 사 55:1 주석; 행 3:6). 자신의 영적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부자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늘에서 볼 때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한” 사람들이다(계 3:17). “심령이 가난한” 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밖의 모든 사람들은 하늘의 부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따라서 하늘의 축복을 거절한다.
복이 있나니.
헬라어 마카리오이(makarioi). 단수는 마카리오스(makarios). “행복한”, “행운 있는”을 뜻함. 히브리어로는 아쉬레(’as∨re, 참조 시 1:1 주석). 아쉬레와 마카리오스는 때때로 “행복한”(happy)으로 번역되었지만(왕상 10:8; 시 127:5; 잠 29:18; 요 13:17; 행 26:2; 벧전 3:14), 제임스왕역(KJV)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두 “복 있는”(blessed)으로 번역되었다.....
산상 설교의 서두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마음에 있는 최고의 욕망, 곧 행복에 대해 연설한다. 이 욕망은 창조주가 친히 인간 속에 심었고, 본디 그것은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과 협력을 통해 참 행복을 발견하도록 이끌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인간이 행복을 최종 목적으로 생각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순종을 무시하고 지름길로 그것을 달성하려고 꾀할 때 죄가 수반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의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취임 연설의 서두에서, 왕국의 주요 목적은 잃어버린 에덴의 행복을 인간의 마음에 회복하는 것이며, 따라서 “좁은” 문과 “협착”한 길로 들어가기를 선택한 자들(7:13, 14)이 참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들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때만 이르러오는 영혼의 참되고 영원한 만족, 곧 내적 평강과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빌 4:7). 그리스도가 아버지께로 갈 때 그는 바로 이 평안, 곧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요 14:27)을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남겼다. 행복은 하나님(참조 롬 5:1)과 그들의 동료(참조 미 6:8)들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자들, 곧 사랑에 관한 위대한 두 계명을 좇아 행하는 자들의 마음에만 이르러 온다(참조 22:37~40). 이러한 생각과 마음의 성향은 오직 은혜의 왕국의 참된 백성들만 소유한다.
천국.
참조 마 4:17; 눅 4:19 주석. 그리스도가 여기서 말하는 것이 미래에 있을 영광의 왕국이 아니라 현존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 속에서 가라지, 겨자씨, 누룩, 그물의 비유(13:24, 31, 33, 47) 그리고 그밖의 많은 비유(참조 산상보훈, 8, 108)를 통해 예증한 것처럼, 종종 그의 주권을 받아들인 자들의 심령에 건설된 은혜의 왕국에 대해 다루었다. 유대인들은 천국을, 이 지상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힘에 기초한 왕국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와서 세운 왕국은 사람의 심령에서 시작하여, 그들의 삶에 침투하고, 역동적이고 강력한 사랑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심령과 삶으로 흘러 들어가는 왕국이었다.
그들의 것.
자신의 필요를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에 들어가는 첫 번째 조건이다(참조 산상보훈, 7, 8). 비유 가운데서 세리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긴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 간 것”은 자신의 영적 필요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다(눅 18:9~14). 천국에는 교만한 자들, 자족하는 자들 그리고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을 위한 여지는 없다. 그리스도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가난을 그의 은혜의 부요함으로 바꾸라고 명한다.(성경주석)
가난하다는 것은
없는 것이 많고
그만큼 필요한 것이 많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이 많으니 그것들을
찾고 구하는데 열심일 수밖에 없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 안에 없는 것들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껴서
열심히 바라고 구하게 되는 상태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구하면 얻을 것이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복의 문을
인간을 향해 활짝 열어 놓으시지만
구하지 않아도 쏟아지기보다는
구할 때 얻고 찾을 때 찾아지는 것이다.
천국이 공급해야할 것들에 대한 필요를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
그래서 열심히 구하고 받는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고
천국을 누리는 사람인 것이다.
예민하게 필요를 느끼고
열렬하게 구함으로
천국을 경험하는
복 있는 사람 되기를 소원합니다.
가족 동행들 하늘의 도우심이 필요한 사람들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