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마5:13 맛을 잃은 소금

찐찐~* 2023. 4. 1. 07:44

마태복음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

팔레스타인에서 소금은 해변의 습지나 내륙의 호수에서 거둬들인다. 소금 수확을 위한 조잡한 시설 때문에 많은 불순물들이 남게 된다. 습기와 접촉하거나 비에 노출되면 순도 높은 가용성 소금 자체는 씻겨 나가고 싱거운 불순물만 남는다.
천국 시민들을 소금에 비유한 사상의 근저에 있는 것은 방부제로서의 소금의 특성이다(참조 산상보훈, 35). 냉동장치나 기타 음식을 보존하는 현대적 방법이 나타나기 전에 소금과 향료는 주로 어떤 것을 보존하는 데 사용했다. 고대 팔레스타인에서 소금은 거의 이 목적을 위해서나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로만 사용되었다(참조 욥 6:6). 이와 유사하게 그리스도인은 복음 전파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대리자가 됨으로써 세상에서 부패를 방지하고 정화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제자들은 동료들의 구원을 그들의 제일 의무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박해(참조 5:10~12)나 기타 이유 때문에 사회로부터 물러설 수 없었으며, 그들의 동료들과 밀접한 접촉을 계속 유지해야 했다.

그 맛을 잃으면.

즉 “싱겁게 되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리 소금이라고 해도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본질적인 특성을 잃어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이름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의 명목상 천국 시민권은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불과할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품성을 반사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떠한 신앙 고백을 하든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짜게 하리요.

기능이 회복된 소금의 본질적이며 유용한 특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 능력 그리고 의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상실될 때 그는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돌아갈 다른 원천이 없는 것이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없다. 소금은 고대의 제사의식에서 모든 제물에 첨가되었으며, 그것이 빠진 제사는 가납될 수 없었다(레 2:13; 스 43:24; 막 9:49). 여기서 소금은 그리스도의 의를 표상한다(참조 시대의 소망, 439).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롬 12:1)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 인해 보존되고 맛을 내야 한다(참조 갈 2:20).

아무 쓸데없어.

삶에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잃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 쓸데없”다. 더욱이 그는 왕국의 원칙들을 잘못 나타내는 생활을 함으로 왕국의 대의에 실제적인 방해물이 된다.(성경주석)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품성을 반사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떠한 신앙 고백을 하든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능력 그리고 의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상실될 때

그는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돌아갈 다른 원천이 없는 것이다."

"삶에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잃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 쓸데없”다."

 

그리스도의 품성을 반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가 안보인다.

사랑이 없다...

따라서 나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다..

 

삶에 활력이 없고 

죽은 것 같고 

의욕이 없고 

그저 직장을 왔다갔다 하고 

하던대로 교회에 가고 

하던대로 큐티를 하는 것 외에

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요즘의 삶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주어진 기회일까...?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붙잡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확신이 안선다. 

영적인 분별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내가 따지고 있는 것들 중 

영적인 것에 관련된 것이 없더라,,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내가 무슨 그리스도인인가,,,

 

맛을 잃은 소금. 

지금 내가 딱 그렇다. 

아무 능력도 힘도 의지도 빛도 없이

그저 살고 있다. 

답답하게, 한심하게, 소심하게,

지지부진하게....

오래 살고 싶지 않다면서,

그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얼마나 더 열심히, 에너지 있게 

살아야할텐데 말이다. 

 

원래의 맛을 회복하고 싶다. 

방부제로서, 조미료로서

적당히 짜서 소금다운 소금이고 싶다. 

 

아버지 도와 주세요.

소금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인지 

알려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회복될 길로 나갈 수 있게 도와 주세요.

 

가족 동행들 영적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