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22 성한 눈이 필요하다
마태복음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
즉 인간에게 하늘의 시력을 주고,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영혼의 눈(참조 롬 1:20; 참조 히 11:27). 이러한 시력은 육체적 시력이 육체의 길잡이인 것과 똑같이 영혼의 길잡이다.
등불.
헬라어 뤼크노스(luchnos). “등불.” 이것은 “빛”을 뜻하는 헬라어의 포스(pho-s)가 아니다. 뤼크노스는 빛 자체가 아닌, 빛의 공급원이나 빛을 비추는 매개체를 가리킨다(참조 5:15 주석). 22절과 23절은 19~21절에 진술된 원칙의 예증을 제공한다. 세상 부를 축적하는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영적 시력에 결함이 있으며 영혼에 어둠이 있다는 증거이다(참조 34절). 몸의 “등불”은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에 대한 진정한 비교 가치를 평가하는 통찰력이다.
성하면.
헬라어 하플루스(haplous). “단순한”(복합된 것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진지한”, “절대적으로 진실한”, 펼쳐진 천 조각 같이 “구김살 없는.” 이 구절에서 하플루스는 포네로스(pone-ros) 곧 “나쁜”과 대조를 이루며 서있다(참조 23절 주석). 여기서 그것의 의미는 5:48에 나타난 “온전”이란 말과 매우 유사하다(참조 5:48 주석). “양호한” 또는 “건강한 상태”를 의미하는 “건전한”(sound, 개정표준역(RSV))은 문맥에 적절한 번역이다. 영적인 “눈”이 “성한” 그리스도인이란 그의 통찰력과 판단으로 인해 꾸밈없는 단순성, 천진함, 소박함 그리고 순수함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는 시간과 영원에 속한 사물들을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눈이 성하면 목적이 성하고 천국과 천국의 영원한 원칙을 실행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게 된다(빌 3:8, 13, 14; 산상보훈, 91).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력의 초점을 맞추고 집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혼에 참 등불이 있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초점을 예리하게 맞춘 영적인 시력을 소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력은 흐려지고 진리와 의무에 대한 판단은 불완전하게 될 것이다(참조 계 3:18 주석).(성경주석)
나이를 먹으면 노안이라는게 찾아온다.
그러면 전에 보이던 것이 안보이고
어두워지는만큼 어릿어릿 둔해지기도 한다.
시야가 좁아지니 삶의 반경도 좁아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늙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서럽기만 하지만, 그래도 희망적인건
영적인 눈은 젊은이들보다 더 밝고
성할 수 있다는 것!
영적인 “눈”이 “성한” 그리스도인이란
그의 통찰력과 판단으로 인해
꾸밈없는 단순성, 천진함, 소박함
그리고 순수함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 구절이 중요한 구절이긴 한데
이해가 잘 가지는 않는다.
통찰력과 판단이란 단어들은
단순,천진, 소박, 순수라는 단어들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데...........
그 통찰력과 판단이라는 것이
돈과 권력의 흐름을 빠르게 알아채는
세상적인 의미가 아닌 것을 생각하면..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영적인 것에 대한 안목,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삶을 보는 눈이 있다면,
복잡할 것이 없어지고
단순하고 천진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단순, 천진, 순수..
정말 절실하게 바라는 것들이다.
늘 뭐가 그리 복잡한지 모르겠는 내게는,
단순하고 천진한 삶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하다.
성한 눈을 가지면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성한 눈을 가져야겠다.
가지고 싶다..
아버지를 알기 때문에
다 맡기고 믿고 의지하는 삶,
그래서 단순하고 편안하고
천진하고 겸손한 삶,
그런 삶을 곧 살게 되기를..소원합니다..!
가족 동행들 복잡한 사람들, 산불 피해 난민들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