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8:8 백부장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마태복음8: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예수는 침례 요한에게 침례 베풀어 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 이때 요한은 자신이 예수께 침례 베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어떤 이들은 백부장의 이 같은 겸손한 행위를 예수는 유대인이고 자신은 이방인이라는 민족 차별적 통념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나 만약 이러한 이유에서였다면 이 백부장은 예수께 이런 요청 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이 견해는 타당치가 않다. 또한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감당치 못하다’란 어구의 원어인 ‘우크 하키노스’은 영적, 도덕적 충족성이 몹시도 결여됨을 고백한 말로서(3:11) 어떤 권위있는 대상에 대하여 인간이 스스로의 무가치함을 느낄때 사용된다. 이는 분명 자신의 죄악됨을 인식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절대 거룩성을 인지(recognition)했음을 반영하는 진술로서 백부장의 겸손한 심정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겸손한 영혼에게 주의 다함 없는 은혜가 필시 수여될 것이다(시 147:6).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이 백부장은 분명 예수의 말씀만으로도 자기 하인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같은 그의 요구는 그가 예수를 전능한 절대자로 믿었음을 증명해 준다. 사실 예수께서 병자에게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말씀으로만 치유의 은총을 베푸셨다는 기록은 요 4:46-53의 사건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경우였기에 백부장의 믿음은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한편 만약 그가 예수를 어떤 비상(非常)한 의사로 생각했다면 특효약이나 손을 만지는 등의 치료 요법을 요청했을 것이고 또 능력있는 종교 지도자 정도로 생각했다 하더라도 기도나 안수등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씀 속에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음을 믿은 때문이며 이것은 그가 예수께 대해 신적 메시아임을 고백한 것과 같은 것이기도 하였다.(만나주석)
도대체 이 백부장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누가복음 7장에는 이 사람이
유대인에게서 존경을 받았다고 했고,
자기 가족도 아니고 하인의 병 낫기를
구한 것을 보면 그 성품이 짐작되긴 하지만,
과연 로마의 백부장으로서 이 사람은
예수님을 어떻게 주로 인정하게 되었을까?
참 신비한 일이다.
우선 이 사람은, 타고났는지
후에 변했는지는 몰라도
겸손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인들뿐 아니라 수하에 있는
100명의 군사도 잘 보살폈을 것이고
적대적인 유대인들에게까지
인정을 베풀고 선대했음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가족이
예수님께 치료받은 얘기를 들었을수도 있고
예수님의 설교를 전해들으면서
혼자 공감하고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바리새인들의 거만하고
이중인격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참된 신앙의 모습을 보게되길
염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그의 마음은 이미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고 열려 있었고
바리새인들과는 다른 참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되어 기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그분이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베푸시니
메시아에 대해서까지는 몰랐더라도
그분은 분명 하늘의 사자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하인 얘기를 하고
말씀만 하시면 낫겠다고 했던 것은
그런 확신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고 행동이었다.
성경에는 단편적인 행동과 말만
기록되어 있지만, 그 사람의 안에서
이미 오랜 시간 일어나고 있던 변화와
놀라운 기적들을 상상해보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다.
이 다음에 내가 했던 상상과 일치하는
그 놀라운 파노라마들을 보게 된다면
그 감동과 기쁨은 얼마나 배가 될까!
이미 그것을 다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이 배아파하고
시기하고 기분 나빠할 선언을 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고.
하늘에서는 이런 수만가지의 에피소드들을
책을 읽듯이 매일 목격하는 즐거움이 있겠다.
나도 그 에피소드들 중 몇 장을
차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놀라운 변화와 기적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면을 차지할 수 있음 좋겠다.
오늘도 제 안에서
긍정적이고 행복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길 소원합니다.
인도해 주세요.
가족 동행들 불편한 사람들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