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7:4 유다는 왜
마태복음27: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개역한글)
내가…죄를 범하였도다.
전적으로 유다는, 예수가 고문하는 자들에게서 스스로를 구원할 것으로 기대했다(참조 시대의 소망, 721). 예수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자 유다는 자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배신자가 예수의 무죄함을 증거하기 위해 유일한 증인으로서 앞으로 나아간다. 정죄받은 사람의 권익을 보호해 주는 유대의 사법적인 규정들에 대해서는 26장의 추가적 설명 2를 참조하라.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산헤드린은, 유다가 자백을 통해 강력하게 제시한 새로운 증거를 완전히 무시했다. 그의 고백으로 지도자들이 크게 당황했을 것임이 분명한데, 그들이 그 계략의 공모자임이 유다 때문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다를 뇌물로 매수한 것이 분명해졌으며, 그러한 행위는 모세의 율법을 직접적으로 범한 것이었다(참조 출 23:8).(성경주석)
재판이 거의 끝날 무렵에 이르자 유다는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무죄합니다. 오! 가야바여! 그를 살려 주소서”라는 목쉰 음성이 갑자기 재판정을 울렸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은 전율(戰慄)을 느꼈다.놀란 군중을 헤치고 나아가는 키가 훤칠한 유다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수척했으며 그의 이마에는 큰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곧장 재판석으로 달려가 대제사장 앞에 그의 주님을 판 값으로 받았던 은전을 내던졌다. 그는 가야바의 옷깃을 움켜 쥐고 그분은 죽음에 처할 만한 일을 결코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가야바에게 예수님을 놓아 달라고 간청했다. 가야바는 화를 내며 그를 뿌리쳤으나 당황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좋을지를 알지 못했다. 제사장들의 불성실함이 드러났다. 저희가 이 제자를 매수하여 그의 주를 팔게 했다는 것이 분명했다.
유다는 또다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부르짖었으나 대제사장은 다시 침착하게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마 27:4)는 말로 조소 섞인 대답을 했다. 제사장들은 유다를 자기들의 도구로 삼은 것을 기뻐했으나 그의 비열함은 멸시하였다. 그가 통회하며 그들에게 돌아갔으나 그들은 그를 쫓아 버렸다.
유다는 이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면서 그분께 당신 자신을 구원하라고 간청하였다. 구주께서는 당신을 판 자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유다가 회개하지 않았고 그의 자복 역시 그가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팔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부인한 일에 대해 마음 찢는 깊은 슬픔을 느낀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죄에 대한 공포심과 장차 받을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에 가책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임을 아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정죄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측은한 마음으로 유다를 바라보시면서 내가 이 때를 위하여 세상에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온 회중은 놀라 술렁거렸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배반한 자를 관용으로 대하시는 태도를 경탄하면서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또다시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그분이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왜 자신의 속박을 풀고 자기를 고소하는 자들을 물리치지 아니하시는가 하고 의심하였다.
유다는 자기의 간청이 헛된 줄 알고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고 부르짖으며 재판정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차마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나아가 절망 중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시대의 소망,722)
가룟유다는 왜 자살을 했을까?
뭔가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예수님이 메시야로 군림하는 대신
십자가형에 처할것이 확실해지니
양심의 가책이 극심해서 견딜 수 없어서?
아니면 예수님의 왕국에서
한 자리 차지할 꿈이 사라져서?
유다에게는 예수님을 파는 일이
마지막 승부수였던것 같다.
그가 지금껏 보아온 모든 기적과
예수님의 사역은 분명히
그분이 하늘로부터 온 분임을 증거했기에
그는 그분이 왕으로 등극하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 이상한 얘길 하셨고
조급증이 난 유다는 얼른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고자 치밀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러나...그의 계획은 실패했다.
예수님이 등극하기는 커녕
십자가에 매달릴 형편이 되었고
자신은 배신자로 낙인 찍힌데다
바라던 꿈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마지막 승부수가 망했으니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었던가보다.
산헤드린 재판정에서
예수님의 무죄를 부르짖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던
그 최후의 순간에
그분의 마지막 호소와 사랑을
그가 붙잡았더라면...!
그도 베드로처럼 회심한 제자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참 안타까운 사건이고 인생이다..
가엾은 인생에게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회를 주신다.
붙잡으려고만 하면
기회는 끝까지 열려 있는 것이다.
주시고 또 주시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게 되기를 원하고 원한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기회를
붙들고 또 붙들기를 소원합니다.
가족 동행들 위기 가운데 있는 사람들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