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막1:22 완전히 다른 가르침

찐찐~* 2023. 8. 31. 07:19

마가복음1: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놀라니’에 해당하는 ‘엑세플레쏜토’은 ‘밖으로’를 뜻하는 ‘에크’과 ‘친다’를 뜻하는 ‘플레쏘’의 합성어로서, 이는 문자 그대로 놀라움과 경이에 가득차서 ‘정신이 멍하다’, ‘넋을 잃을 만큼 감동을 받다’를 의미한다. 본문의 의미는 그들이 순간적으로 놀라고 그친 것이 아니라 한동안 놀라움에 휩싸여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의 산상수훈에 대한 군중들의 반응도 이렇게 표현되었다(마 7:28). 한편 청중들 편에서 볼 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토록 놀랍게 하였던가? 이에 대해 마가는 그 ‘교훈’(디다케)에 놀랐다고 보고한다. 이 ‘교훈’은 능동적 측면에서 가르치시는 행위 또는 방법을, 수동적 측면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각각 의미하는데, 본문은 이 양자를 모두 포함한다. 실로 목수 출신이었던 그가(6:3) 어떻게 그러한 지혜를 나타내 보일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 그들의 깊은 의문점이었으리라. 이러한 의구심에 대해 마가는 ‘교훈’이란 말에 덧붙여 특별한 이유, 곧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하는 설명구를 달았다(마7:28,29). 다음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시는 방법과 내용및 서기관들의 가르치는 방법과 내용 사이의 차이점들이다. (1)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신 것에(요 14:6, 18:37) 반해 서기관들의 설교는 대부분이 와전(訛傳)된 것이었고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사변적(思辯的)인 것들이었다. (2)그리스도께서는 중대한 의미가 담긴 문제들, 곧 생명과 사망 그리고 영원에 관한 문제들을 제시하셨지만 서기관들은 하찮은 문제들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였다(마 23:23, 눅 11:42). (3)그리스도께서 전파하시는 내용에는 체계가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탈무드(Talmud)경이 그렇듯이 서기관들은 자주 중언부언(重言復言)하였다(마 6:7). (4)그리스도께서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례들을 사용하심으로써 청중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셨지만 서기관들의 설교는 고류하고 형식적인데만 얽매여 있었으므로 메마른 심령들의 갈급함을 채워줄 수 없었다. (5)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자요, 그들의 영원한 축복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자로서 말씀하셨으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사람에 대해 언급하셨다. 하지만 서기관들은 가장 중요한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다. (6)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본 구절에 진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권세’를 가지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가 전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과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요, 실행 능력을 겸비한 탁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요 8:26).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곧 아버지의 메시지요, 성경의 메시지다. 그러나 서기관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대부분 그들의 스승들의 유전에서 온 것으로서 고작 스승들의 교훈을 인용하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었다(7:8,13, 마 15:2,3). 그들은 마치 깨어진 물통에서 물을 퍼내려고 헛되이 노력하였던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생수의 근원’(렘 2:13)이 되시어 자신으로부터 물을 공급하셨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그리스도의 기르침과 당시 종교지도자를이었던 서기관들의 가르침의 차이는 근본적인 면에서 상이(相異)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듣고 백성들이 놀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만나주석)

 

주석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명료하게 말씀하셨고 

당시 유대 선생들은 

랍비들의 유전을 가르쳤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의 영원한 삶에 관심이 있었고 

서기관들은 청중에 대한 사랑이라곤 없이

자신들의 유전을 따르도록 강요만 했다. 

 

예수님의 교훈을 들은 사람들이 

넋이 나갈 정도로 놀랐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 아니었겠는가.

 

목사님들의 설교도 그렇다. 

말씀 한 구절구절을 깊이 있게 

묵상함으로 나오는 설교는 

흥미거리를 많이 제시하는 설교보다

훨씬 감동과 능력이 있지 않은가. 

 

우리도 예수님의 교훈을 깨닫고 

예수님의 모본을 따를 수 있다면

세상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을 꿈꾼다. 

 

세상의 사람들이 교제하는 방식이 아닌,

예수님이 사람들을 대하신 방법으로 

소통하고 교제하며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늘이 주시는 지혜와 명민함으로 

흔들리지 않는 그런 인생이 되길 원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예민하게 느끼고 따르기 원합니다. 

도와 주세요. 

그동안 중요하지 않은 것에 연연해왔던 

삶의 방식을 벗어버리고 

정말 중요한 것을 붙들기 때문에 

단호하고 단단한, 그런 모습으로 

변하고 자랄 수 있게 도와 주세요. 

 

가족 동행들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