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요한은 거대한 우주적 흐름을 보여주며 가장 중요한 진리를 묘사한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하며 밀접한 관계를 맺는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그 영광은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는 하나님 사랑의 신비한 역설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자는 삶에서 믿음을 능동적으로 실천한다.
일,태초에-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구절에서 “하나님”이라는 용어에는 정관사가 있으므로 이는 특정한 존재, 즉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킨다. 말씀인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구절에서 “하나님”이라는 용어에는 관사가 없으므로, 이 구문은 그분의 신성한 특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지만 여전히 신성의 두 번째 위격이며 신성한 아들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월,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한에게 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소통하셨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방식으로 자신을 인류에게 나타내셨다. 요한복음에서 로고스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오셔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며 사람에게 오셔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된 것이다.
화,말씀을 듣는 자와 듣지 않는 자
“내가 태양이 뜬 것을 믿는 것처럼 그리스도교를 믿는 것은, 빛을 볼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빛에 의해 내가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영광의 무게, 홍성사, 2019).요한복음 1:9의 의미를 살펴보라. 빛은 모든 사람에게 비취지만 모두가 그 빛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사도는 글을 쓴 이유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요 20:31)이라고 기록한다...그것은 요한복음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가리킨다.
수,계속 나타나는 주제-신뢰/불신
요한복음에는 ‘믿음’을 뜻하는 명사 pistis(피스티스, 헬라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믿다’로 쓰인 동사 pisteuō(피스투오, 헬라어)는 신약 전체에서 사용된 241회 중 98회가 요한복음에서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실제로 요한복음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믿음이라는 주제가 명사가 아닌 동사로 반복하여 사용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매우 능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념이 누적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매일의 삶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믿는 사람 또는 믿게 된 사람은 예수께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보이거나 꾸짖으실 때도 그분을 향해 열려 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나오며 피하지 않는다. 그분은 그들을 비추는 빛이시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반면에 불신자들은 대체로 논쟁하려는 목적으로 예수님께 온다. 그들은 빛 보다는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여기거나 그분이 오래된 전통을 깨고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분의 빛이 그들을 살피고 판단하도록 맡기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이 예수를 판단하려 한다. 이러한 태도는 국가의 영적 지도자로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받아들였어야 할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목,계속 나타나는 주제-영광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개념은 그분의 때, 즉 그분의 죽음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요 2:4, 7:30, 8:20, 12:23-27, 13:1, 16:32, 17:1 비교). 십자가가 바로 그분의 영광의 때이다.십자가는 고대 로마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사형 집행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 개념은 실로 역설적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이 놀라운 부조화는 그 속에 인간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계획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십자가는 구원과 자비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아버지께 드린 곳이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영광이 예수님이 겪으신 가장 깊은 수치, 즉 세상 죄를 짊어지심으로 빛나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이고 신비한 일인가!
금,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람이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진정한 욕망으로 저희 생애를 개선하려고 힘쓰는 일이 있을 때마다 저들을 이끄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저들이 알지 못하는 한 감화력이 저들의 심령에 작용하여 양심이 각성되고 외적 생애가 개선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저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쳐다보고 저희 죄 때문에 못 박히신 자를 주목하게 하실 때에 저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26).
-교과 본문 중에서-
빛과 능력과 복은 계속해서
내게 내려오는데
그것을 알아보고 느끼고
붙잡는 것은 내 선택에 달려 있다.
사는 동안 나는 그 기회들을
가능한한 많이 알아채고
최대한 많이 누리고 선택하길 원한다.
도와 주세요
겸손하고 지혜롭게
그 능력과 임재를 느끼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가족 동행들...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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