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4: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
베데스다에서 치유한 일이 있은 후에 산헤드린이 예수를 배척한 사건(요 5:16, 18)은 유대 지방을 위한 그의 사역에 종지부를 찍게 하였고, 그를 갈릴리로 떠나게 했으며 그곳에서 공적 봉사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도록 기여한 또 다른 요인은 침례자 요한이 얼마 전에 투옥된 사건이다(참조 마 12; 막 1:14; 요 4:1 주석).
예수께서…들으시고.
침례자 요한의 투옥이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거절한 것과 그의 초기 유대 지방 봉사가 마쳐진 일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참조 예수의 생애와 봉사, 도표 6),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뒤 갈릴리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을 중단시킨 위기가 있기 바로 전에 요한이 죽었다는 것을 살펴보면 흥미있다(참조 14:10~21; 예수의 생애와 봉사, 도표 7). 예수가 갈릴리로 물러가 그곳에서 사역을 계속한 것은 자신에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배척과 요한의 투옥 때문이었다(참조 눅 4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요한의 잡힘. 참조 눅 3:19, 20 주석...산헤드린에서 이와 거의 동시에 예수를 공식적으로 배척했다는 사실(참조 눅 4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은 이 두 사건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베데스다에서 병자를 고친 후에 가해진 산헤드린의 위협은 예수를 두렵게 하여 공적인 활동을 계속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물러가셨다가.
그의 봉사 영역을 갈릴리 지역으로 옮긴 것을 말함. 이것은 유월절이 지난 AD 29년 봄이며, 침례 이후에 유대에서 갈릴리로 “물러”간 것은 이번이 적어도 세 번째다. 갈릴리로 물러간 첫 번째는 AD 27, 28년 겨울이었으며(참조 요 1:43), 두 번째는 1년 후인 AD 28, 29년 겨울이었다(참조 요 4:1~4 주석). AD 29년인 그 다음 유월절에 유대를 떠난 후, 예수는 AD 30년 가을 초막절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시대의 소망, 393, 395, 395, 450). AD 29년 봄에 예루살렘을 떠남으로 일반적으로 갈릴리 봉사라고 일컫는 사역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시대의 소망, 231, 232,; 산상보훈, 2). 유대인 당국자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제 죽음을 각오한 예수는 큰 방해 없이 사역을 수행할 수 있었다. 예수가 사역을 맨 먼저 유대에서 시작한 것은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자신을 메시야로 영접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했더라면 유대 나라는 틀림없이 거룩한 옛 선지자들이 마음에 그렸던 원래의 계획대로 그에게로 다시 모였을 것이며, 온 세상 앞에 그를 드러내는 특권을 누렸을 것이다.(성경주석)
침례요한의 외침뿐만 아니라
그의 투옥과 죽음까지도
예수님의 사역을 예비하는 지표가 되었다.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이
하늘의 시간표대로 이루어지는 그 과정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의 길을
한 발 앞서 갔던 사람이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세상에 나고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투쟁의 삶을 시작할 때
요한은 광야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으며
예수님의 공적 봉사가 시작되기 전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그의 등장을 예비하였고
유대인들에게 배척 받으실 예수님보다
앞서 감옥에 들어갔으며
갈바리에서 돌아가실 예수님보다
앞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그의 생은 인간적 안목으로는
참 비참하고 너무 가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비록 예수님과 물리적으로
함께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는
메시야의 이생의 삶에서
구속의 험난하고 외로운 길을
함께 동행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하늘에 가서 모든 사실을 확인하게 될 때
얼마나 놀라운 기쁨과 감동이 넘쳐날 것인지..!
이생의 삶이 비록 외롭고 험해도,
예수님의 임재가 직접적으로 와닿고
느껴지지 않아서 방황하고
제자리걸음을 할 때가 많을지라도,
최후에 내가 맞이하게 될
그 놀라운 기쁨의 순간을 기대한다면
지금 나는 흔들림없이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끝까지 나아가는 길이다.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설움과 아픔과 고통을 보상 받는,
기대해도 좋은 길이다.
그리고 절대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 내 아버지는
내가 가는 모든 길에 항상 함께 하신다.
그분을 내가 끝까지 믿고 따라가고
결국에 만나게 되기를..소원한다.
결국에 아버지를 만나는 길까지
계속 나아가는 인생 되길 소원하고 소원합니다.
가족 동행들 서럽고 아프고 고통 받는 이들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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