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서기관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교의적이었고, 장로들의 전통에 기초되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치는 방법에는 그가 말한 진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서기관들의 가르침의 죽은 형식주의와 대조되는 생명을 공급하는 권능이 있었다. “서기관들”에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라는 말을 추가하는 독법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
7장의 추가적 설명
후기의 어느 유대 학자도 예수가 남긴 것처럼 수많은 종교적 및 도덕적 말씀들을 남기지 못했다. 후기의 어떤 유대 학자도 우리가 예수의 교훈들에서 그토록 감탄하는 간결하고 권위 있는 태도로 자신의 말들을 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후기의 어떤 유대 학자도 예수가 추구한 것과 같은 목적들을 추구하지 못했다. 모든 유사점들에도 불구하고 바로 여기에 주된 차이점이 있다. 예수는 바리새인의 행함에 의한 구원의 교리를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며, 율법주의적 의의 부당함을 담대하게 가르쳤다. 동시에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보다 더 높은 의로 인도하는 새로운 길을 보여 주었다. 랍비 문헌은 랍비들에 의해 설명된 것처럼 유대인들의 종교는 자기 구원의 종교였다는 압도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의 신앙은 어떤 특정한 윤리적 진리와 교훈의 집합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안에, 그의 인격체와 그의 사역 안에 있는 것이다.
예수의 교훈들의 영적 중요성은 단순히 그들의 위대한 도덕적 원칙들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이 교훈들 중의 다수는 구약에, 즉 하늘의 빛에 의해 각기 다른 정도로 조명된 사람들의 말씀들 가운데 이미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이 말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주의를 끌게 하는 권위를 가지고 말하였다. 우리의 주님을 뚜렷하게 구별짓는 것은 그분은 하나님이고, 다른 교사들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간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말해주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러한 삶을 영위해 나갈 능력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오셨다. 그는 인간들에게 죄는 악하고, 인생의 참 목표는 의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왔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죄를 도말해 주고 사람들에게 하늘 위로부터 오는 의를 나누어주기 위하여 왔다. 이것을 인간 교사들은 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그들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요 14:6). 그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다(고전 1:30).
예수는 “참빛”이다(요 1:9). 그는 다른 사람들의 빛을 반사하는 자가 아니라, 비취는 모든 빛들의 근원이다(참조 요 1:9; 5:35 주석). 선하고 고상하게 하는 모든 것은 그로부터 기원되고 그에게로 나아간다.(성경주석)
권위는 스스로 세운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경건의 모양은 다 갖추고 성경을 가르쳤어도
그들의 말에는 권위도, 감동도, 힘도 없었다.
물론 그리스도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 자체로 권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분이 초라한 인성을 쓰셨음에도
그 말씀에 권세와 힘이 있었던 것은,
잘 차린 의복과 겉모습은 전혀 없었을지라도
그분의 행동과 말이 진실하고 꾸밈없고
과장이나 허영, 거드름이라곤 전혀 없으며
말씀하시는 그대로 살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었다.
말을 잘하는 설교자가 많고도 많은 세상이다.
그런데 마음에 와닿는 감동을 주는 설교는 많지 않다.
물론 설교자의 삶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그냥 잘 구성되고 논리정연한 설교인지,
본인이 먼저 감동되어 하는 말씀인지는
느껴지게 마련인 것이다.
아직은 감동을 주는 설교자가 있음에 감사한다.
그런데, 사람의 말은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말씀을 스스로 연구하고
시간을 들여 예수님께 직접 들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감사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 길에
진정한 인도자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예수님이 내 생애를 지도하시고
인도해 주시길 원하고 바란다.
그러면 더 자주 말씀을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일상이 부끄럽긴 하지만..
예수님이 계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말씀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권위있고 생명력이 있고 감동이 있는
아버지의 말씀을 직접, 자주 듣고
주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도 말씀해 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가족 동행들 사람들...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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