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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마5:5 자신을 통제하는 적극적인 온유

마태복음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호이 프라 에이스).

‘온유한’이란 말은 시편 36:11의 70인역(LXX)에서 나온 것이다. 그 주제는 한 인간이 역경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를 끝까지 보살피실 것이라고 굳게 믿는 신앙으로 인하여 기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온유’란 외형적인 폭력이나 잔인함의 반대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그 고통을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자세인 것이다(11:29, 약 3:13). 이에 대해 칼뱅(Calvin)은 ‘온유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며 노하기를 더디하며 절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자연적 격노에 대하여 관용을 취하는 덕성’이라고 정의하였다. 실로 세상의 정복자들은 강한 힘과 권력으로 땅을 정복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온유하심으로(11:29, 21:5) 세상만물과 천국의 주인이 되셨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본문의 땅은 시 37:11의 약속의 땅에 대한 인용이다.....예수께서 말씀하신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구절의 진정한 뜻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창 15:18)에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이 메시아 왕국의 절정이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사 66:22, 계 21:1)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강하면서도 공격적인 자, 질서를 무시하는 난폭자가 땅을 차지하게 되지만 천국의 기업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온유한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시 37:1, 11, 22, 34). 왜냐하면 온유한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해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이 모두 그들의 소유(고후 6:10)가 되고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롬 8:17).(만나주석)

 

"하나님을 향한 "온유"는 우리가 그분의 뜻과 선대하심을 받아들이고, 범사에 주저함 없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온유한"사람은 자신을 완전히 통제한다.(성경주석)

 

온유란 흔히 오해하듯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느낌의 특성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나를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분은 사람들을 존중하시고 

따뜻하게 대하시고 사랑하셨는데 

소극적으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통을 받고 죽기까지 하셨다. 

그분의 성품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살아야할지가 분명해진다. 

 

그런데 나는 끝없이 

이 세상은 그렇게 살기가 힘들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 

 

직장 동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선을 지켜야 편하게 살 수 있고 

힘든 사람은 안보고 사는게 좋고 등등

나를 지키기 위한 강의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내가 괴롭지 않고 

내가 고통받지 않으려면 

무시하고 외면하고 회피하라는 세상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안사셨다. 

그분은 적극적으로 사랑하셨고 

배신 당하고 외면 당해도 

그 사랑을 그치지 않으셨고 

사람을 끝까지 믿고 아끼고 

참고 기다리셨다. 

그분은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다. 

 

세상은 하늘과 너무 달라서 

그런 사랑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나를 지키려고 애쓰고 너무 몸을 사리는 것은

하늘과는 거리가 있는 삶의 모습 아닌가 싶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람들과 어떤 거리로, 어떤 관계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매일 숙제다. 

 

온유한 사람으로 살기 원한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갈 수 있기를 원한다.

어렵고 낯설지만 그렇게

하늘에 가까워지기를 소원한다..

 

아버지, 

예수님의 온유를 배우기 원합니다. 

가르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배우고 품어볼 수 있게 도와 주세요. 

 

가족 동행들 깨어야할 사람들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