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악이 득세하는 날에
백성의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개입과 죄의 속죄를 통한 언약 관계의 회복에 달려 있다. 주님이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언약하신 구원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대한다(시 79:9).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는 것이다(시 79:9).
우리의 잘못된 행동은 우리의 증거와 사명에도 해악을 끼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갔는가?
월,죽음의 문턱에서
시편 88편은 기자를 죽음 직전까지 이르게 한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한다(시88:6~8). 그러나 주님이 그 주권으로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라면 평안하게 회복하시는 것 또한 그분의 주권 아래 있으므로 대담한 불평을 쏟아 낸다고 하더라도 이런 탄식 또한 분명 믿음의 행위라는 점에 유의하자.
고난과 은혜는 무조건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구원도 모두 그분의 궁극적인 주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경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소망을 싹트게 한다.
화,하나님, 어디에 계시나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여전히 그분은 거기 계시다. 하나님께서 동일하고 변함없으시기에 과거에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던 그분이 오늘도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이 그들에게 가득하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때 시편 기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고백과 겸손한 간구로 하나님을 찾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침묵이 영원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수,하나님의 약속은 영구히 폐하였는가?
시편 기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확신은 그의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해결이 아니라 욥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믿음직하심에 대한 확증이다.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시 77:19)라는 솔직한 시편 기자의 고백은 인간의 눈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과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마침내 깨달은 것을 나타낸다. 그는 자신을 나타내기도 하시면서 동시에 숨기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신비로우시며 주권적인 그분의 역사를 찬양한다.
"우리가 그분에게 나아가 우리의 죄와 무가치함을 자복할 때에 그는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겠다는 보증을 주셨다. 당신의 보좌의 명예를 걸고 당신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성취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실물교훈, 148).
목,악인들이 개가를 부르는 날에
<교훈>세상에서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물의 실상은 인간의 논리가 아닌 영적인 통찰력으로 종말까지를 살펴볼 때에 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금,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대의 모든 힘을 다하여 역경 중에 위를 쳐다보고 밑을 내려다보지 말라. 그리하면 그대는 결코 도중에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구름 뒤에서 그대를 도와주기 위하여 손을 뻗고 계시는 예수님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믿음으로 그대의 손을 그분께 내어 드림으로 그분께서 그대를 이끌게 하는 것만이 그대가 해야 할 모든 일이다. 그대가 신뢰하게 될 때 그대는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희망이 가득 차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5, 578).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는” 때가 기도의 효력을 약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시편 기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과거 구원 행위를 기억하며, 고백과 겸손한 간구로 하나님께 나아갔다(시 77:10~12, 시 89:46~52). “의심과 반대의 세력으로 더불어 투쟁하는 중에 믿음은 굳건하게 자란다.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 얻은 체험은 가장 값비싼 진주보다도 더욱 가치가 있다”(교회증언 3, 555).
-교과 본문 중에서-
하나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
그건 기복신앙이고.
말씀을 보면
하나님 믿는 사람이 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난과 고통 중에
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허다한데 그런 중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우리를 신실하게 이끄시는
하나님 때문에,
삶이 그저 우울하기만 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이 믿음이고
두려운 상황에서
평안한 것이 신앙이다.
저도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기를,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가족 동행들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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