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개역한글)
성령.
구약에는 하나님의 영에 대한 명백한 언급이 많이 있다(민 24:2; 사 6:34; 삼상 16:13; 삼하 23:2; 대하 24:20; 시 51:11; 사 48:16; 겔 11:5; 욜 2:28, 29 등). 그러나 구약에 나타난 성령의 어떠한 현현(顯現)도, (1) 그분의 명확한 신원, (2) 충만히 부어짐, (3) 그에 잇따른 결과 등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리하여 이 날이 때때로 교회의 생일이라 불린다. 예수의 성육신 동안의 생애, 그의 탄생, 침례와 성령을 받은 일, 십자가에 못박힘, 부활, 승천 등에 나타난 위대한 사건들은 극히 중요했으며, 구원의 계획을 전개하는 데 중심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오순절에 있은 성령의 부음은 그리스도의 위대한 희생을 하늘이 받으심과, 그가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즉위한 사건에 연이어 일어났다(참조 사도행적, 38, 39,). 성령의 부음으로 교회는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전에 시도된 적이 없었던 일, 즉 천하만국에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성령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한 성령의 “숨쉼”도 아니었다. 그것은 제자들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을 완전히 사로잡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성령의 도구가 되었다. 그때 이후의 기록에는 그 기억할 만한 날에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났음을 시사하는 것이 전혀 없다. 뒤따른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오순절 경험에서 점점 더 멀어지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사를 받는 일도 점차로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배도가 일어났다. 오늘날의 신자들은 초기교회 역사에 나타난 이러한 엄연한 사실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충만함이 제자들에게만 국한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들과 문맥을 보면, 여자들을 포함하여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을 그가 적용한 것처럼 적용하지 않았을 것이다(행 2:16~18).(재림교 주석)
이것은 단순한 성령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한 성령의 “숨쉼”도 아니었다.
그것은 제자들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을 완전히 사로잡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성령의 도구가 되었다.
이 구절이 인상 깊다.
성령충만이라 함은
성령에 완전히 사로잡히는 것이고
그렇게 사로잡힌 순간부터
성령의 도구로 살아간다는 것..
나는 아직 해본 적이 없는 경험인데
살아있는 동안에 해야하지 않을까.
내 전 존재를 그분에게 맡기고
그 능력과 영으로 사는 것은
과연 어떤 삶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솔직히 두렵기도 하지만..
하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인 성령을
나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특별한 은사를 얻고
특별한 업적을 남기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셨던 삶을 따르고
그분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말이다.
사로잡히게 되기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가족 동행 동료들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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