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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12과 영광의 때

요한복음은 십자가를 예수님의 즉위로서 제시하는데, 이것은 책 전체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요 7:30, 요 8:20, 요 12:27) “그의 때”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십자가형은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가장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죽음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즉위의 개념을 연결하는 것은 엄청난 역설이다. 이러한 대조는 예수는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분이 구세주로 즉위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요한이 역설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일,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는 질문으로 대답한다.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요 18:35). 이 질문은 예수님의 질문이 자신의 턱밑까지 온 것이 거슬려서 회피하듯 던진 것이다. 그것은 편견으로 총독의 인식을 가로막아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첫걸음이었다.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편견과 자신의 이전에 내렸던 결정, 가해지는 압박감 때문에 진리를 알 기회를 놓쳤다.  

 

월,이 사람을 보라

빌라도는 유월절에 죄수를 풀어주는 관습을 언급하며 백성들이 “유대인의 왕”을 풀어주기를 원하는지 묻는다. 놀랍도록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무고한 예수 대신 강도 바라바를 석방해 달라고 요구한다.

빌라도는 백성들 앞에 왕의 복장을 입히우고 조롱당하는 예수를 세우고는 “이 사람을 보라”(요 19:5, 흠정역)라고 외친다. 요한이 별다른 해석을 하지 않았지만 빌라도의 말은 독자들에게 침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한 말을 생각하게 한다. 이교도 총독이 이스라엘 앞에서 왕의 복장을 한 메시아를 소개하는 역설을 보라.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예수에 대한 그들의 깊은 증오심이 그들의 민족적 열망보다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국가 자치권에 대한 주장조차 기꺼이 희생했다.

<영감의 교훈>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항상 주장하시는 높은 의의 표준을 미워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훈이 결국에는 저희의 이기심을 폭로하는 것임을 알고 그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분의 온 생애는 그들의 이기심을 책망하는 하나의 견책이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시험, 곧 순종하면 영생을 얻고 불순종하면 영원한 사망을 당하게 될 시험이 저희에게 이르러 왔을 때에 저희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거절하였다”(실물 교훈, 294).

 

화,다 이루었다

진실로 그들의 왕이며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께서 한낱 범죄자처럼 십자가에 달리셨다.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일을 완결하고, 성취하신 것이다. 
 
수,빈 무덤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간 후에야, 요한도 무덤에 들어갔는데 요한복음 20:8은 그가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고 말하고 있다.
“제자들은 급히 무덤에 달려가 마리아의 말이 사실인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수의와 수건을 보았을 뿐 저희 주님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증거가 있었다. 수의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이 아니요, 주의 깊게 개켜 있었고 각각 제자리에 있었다. 요한은 ‘보고 믿’었다. ”(시대의 소망, 789).
 
목,예수님과 마리아

낯선 사람은 단 한마디를 말했다. “마리아야.” 그 한마디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한마디였다. 놀란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깨닫고 그분을 알아본다. 

 

금,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빌라도)는 자기의 세속적 권력을 잃어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무죄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편을 택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빌라도처럼 손실과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원칙을 희생하고 있는가! (시대의소망,738)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이루려고 오신 일을 완수할 때까지 숨을 거두지 않으시다가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외치셨다.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다 이루었다’는 부르짖음은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깊은 의미가 있었다."(시대의소망,758)

 

-교과 본문 중에서-

 

빌라도가 진리를 알 기회를 놓쳤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의를 미워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간의 구원에 대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셨다.

 

"마리아야" 그 익숙한 한 마디에 

마리아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진리를 거절하고 놓칠 수 있는,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내게 주시는 기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자존심이 살아서 

화를 내고 거부하는가?

나는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들이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부르실 때

알아들을 수 있어야 이 다음에 

그분의 음성을 듣고 

반갑게 만날 것 아닌가.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빠져 있는 것,

진리와 거리가 먼 것들이라면

나도 진리를 거절할 위험 중에 

있는 것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버지 도와 주세요.

말씀해 주시고 들을 수 있게,

거절하는 대신 

겸손하게 순종할 수 있게 

도와 주세요. 

 

가족 동행들 동료들 위해 기도합니다. 

스트레스에 무디어질 수 있게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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