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사랑은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자세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특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자비는 사랑의 핵심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롬 13:8).
하나님의 율법은 추상적인 원칙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번영을 위해 주신 명령과 지침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결론>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모두의 궁극적인 유익을 위한 은혜이다. 율법과 은혜는 대립하지 않으며 사랑과 공의를 따라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에 사랑과 율법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율법의 제정자는 사랑이기에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폐할 수 없는 거룩한 법이다. 하나님께 신실한 것은 율법 조문을 어기지 않는 것 이상이며,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일,사랑의 법
하나님의 율법은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십계명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사랑의 원칙이며 그 기본 원칙은 에덴동산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 네 계명은 우리가 온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우리가 서로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방법이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위대한 사랑의 계명이 율법에 내재되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 전체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율법은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고,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왜 이런 생각은 말이 되지 않는가?
월,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사랑은 하나님의 율법의 기초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실 때, 그분은 사랑을 지키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이유이며, 율법을 지키시면서 동시에 은혜를 베푸실 수 있었던 이유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있으시다(롬 3:25, 26).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표현인가! 율법은 구속의 과정을 통해 무효화 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확증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악한 것이 아니며, 다른 무엇보다 죄와 우리의 죄된 본성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닌 율법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과 구속에 대한 우리의 절실한 필요를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없애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
화,율법과 은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면 율법과 은혜의 현저한 대조를 당혹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 자체를 하나님의 은혜의 위대한 표현으로 여겼다. 이스라엘 주변 국가의 ‘신들’은 변덕스럽고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그들을 기쁘게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그분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분명하게 가르치신다. 그리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바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의 궁극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거나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는 죄된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영적으로 새 마음을 받아야 한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 주셨지만(출 31:18),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에도 율법이 기록되어야 했다(시 37:30, 31). 하나님의 사랑의 법은 사람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격 자체에 내재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마음에 당신의 법을 새기실 수 있으며, 그분은 언약 백성을 위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히 8:10 참조).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킨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도 그와 같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원한다(요 14:15 참조).
수,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예수님은 “율법의 더 중한 바”를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신명기 5장에서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신 것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안식일이 창조의 기념일일 뿐만 아니라 노예 생활과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기념하는 날인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을 안식일의 즐거움으로 삼으라는 말씀의 의미는(사 58:13, 14) 선을 행하고, 굶주린 자를 먹이며, 집 없이 떠도는 자에게 집을 제공하는 등의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과 정의의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사 58:3-10).
이 가르침과 성경에 주어진 많은 가르침을 고려할 때, 사랑을 통해 율법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행하는 죄만 아니라 태만한 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율법을 이루는 사랑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만 아니라, 정의와 자비를 성실히 증진시키는 사랑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포함한다.
목,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라
성경에 충만하게 표현된 사랑의 율법은 우리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고 명령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즉 다른 교인만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며 행동하라고 촉구한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을 향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영광의 왕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신 것은 이 사랑을 우리에게 심고 우리로 한 가족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는 그리스도의 고별의 말씀이 성취될 때, 곧 그분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사랑할 때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사명이 성취된다. 우리 마음 속에 하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에 적합한 자가 된다”(시대의 소망, 641).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요일 3:11; 4:20, 21 비교). 따라서 베드로전서 4:8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히 10:24, 살전 3:12 참조).
-교과 본문 중에서-
사랑, 사랑, 사랑..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기별이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랑이
참 어렵고도 어렵단 말이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런 것 같고.
사랑뿐이 아니고
성령의 열매들도 그렇고
내가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또 결론은 매일매일
예수님의 도우심과 능력,
그분의 붙드시는 은혜와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우리를 향한 구원의 열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사랑하기가 힘들다.
타고난 본성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아버지는
그 힘든 것을 해내라고 다그치거나
넌 안되니 글렀다고 하시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냥 안심하고 맡기면 된다.
내가 내 힘으로 할 거 아니고
그저 맡기고 매달리면 언제든
그분의 시간에 이루어주실 것이니까.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주신 모든 것,
가족과 직장과 집과 친구와
변함 없고 끝도 없는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축복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임재와 동행이 필요합니다.
함께 해주시고 도와 주세요.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과 인도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 위해 기도합니다.
'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롬11:4,5 남겨두시는 아버지 (0) | 2025.03.28 |
---|---|
교과토의주제 (0) | 2025.03.27 |
롬9:15 토기장이 마음 (0) | 2025.03.22 |
돈이 아니라 꿈 (0) | 2025.03.21 |
롬8:31-37 누가 감히 우리를 (0) | 2025.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