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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막6:34 늘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

마가복음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목자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자신을 만나려고 모여드는 군중들을 보고 예수는 휴식의 장(場)을 빼앗긴데 대한 불쾌한 반응을 보이시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와 제자들의 피곤함을 모두 잊고 깊은 감동과 연민의 정을 강하게 느끼셨다. 실로 예수의 이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정이야말로 모든 구원과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마 14:14 주석 참조). 한편 예수의 이같은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목자없는 양”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당시 율법학자, 바리새인, 서기관 증의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음에도 무리들이 예수를 이렇게 열성적으로 따르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기적 행위가 당시 종교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진리로 받아들여졌다는 증거가 된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이 무리들에게 진리를 공급해주지 않았음으로 무리들은 진리에 심히 굶주려 있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반대로 예수 자신이 지금부터 민중의 새로운 목자로 나선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가 배에서 내려 자신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불쌍히 여기며 여러 가지로 가르친다고 표현하였다. 사실 양보다 더 그의 인도자를 필요로 하는 짐승은 없을 것이다. 목자없는 양은 살았으나 이미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물도, 꼴도, 안식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세처럼 그의 백성을 인도하며(사 40:11), 다윗처럼 그들에게 휴식을(겔 34:23-25) 제공하심으로(Lane Mauer) 그들 이스라엘의 참목자가 되셨던 것이다(요 10:1ff).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무리들과 굶주려 있는 무리들을 향한 예수의 인간애는 애절한 것이었다. 8:2에 나오는 4.000명 급식 이적에서 보여준 예수의 감정은 무리들의 영적인 굶주림만 아니라 육체적 굶주림까지 걱정하며 애통해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인간 사랑은 인간의 영. 육 구원, 즉 전인(全人) 구원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뒤에 나오는 급식 이적에 대한 이해의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만나주석)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 연민과 사랑의 마음은 

자신의 피로와 필요를 잊게 했다. 

 

그런 사랑이 있어야 

'나 집중'에서 벗어날 수 있나보다.

사람에 대한 그런 연민이 있어야 

이기심에서 놓여날 수 있나보다. 

 

예수님은 항상 그러셨다. 

늘 불쌍히 여기시고 

다가오셨고 고쳐주셨고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나는 늘 나 불편하고 

나 부족한 것만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데 아주 더디고 

늘 한발자국 늦다. 

내게도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그 마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도와 주세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이기심과 자아집중에서 벗어나게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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