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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2과 창세기의 기초

<결론>

요한계시록의 몇 가지 큰 개념은 창세기에 기초한다. 그것은 이후의 성경에서 확대하여 설명되며 더 많은 빛을 준다. 예언을 이해하는 열쇠는 사랑의 본질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기희생의 사랑이 예언과 대쟁투의 핵심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대속자인 어린양이며 이것은 인류의 죽음의 문제에 대해 답을 준다. 이 개념들은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속성 그리고 대쟁투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일,"첫 번째 언급"의 원칙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어떤 개념이나 상징이 처음 언급될 때, 특히 창세기의 첫 장들에서 언급되면 그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형성하며, 이는 이후에 해당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반적인 성경 연구와 성경 예언 모두에서 나타나는 원칙은 하나님께서 기본적인 개념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그 개념을 확장시키시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수년, 심지어 수세기에 걸쳐 진행될 수도 있다.

예언을 연구할 때는 많은 핵심 개념이 처음 설명되어 있는 창세기를 잘 이해한 다음, 그 이해의 기초를 토대로 성경 전체를 연구해 나가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

<영감의 교훈>

성경은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지만 진정으로 그것을 생애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자는 극히 적다. 불신은 단지 세상만 아니라 교회에도 놀라울 정도로 퍼져있고 많은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 신앙의 기둥이 되는 교리들을 부인하게 되었다. 영감으로 기록된 위대한 창조의 진리, 인류의 타락, 속죄,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성은 소위 기독교계의 많은 사람에 의해 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사실상 거부되고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583).

 

월,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

죄의 본성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우리의 이기심과 교만으로 오염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분명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우리 자신의 제한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중에서 아마도 “사랑”이라는 개념만큼 죄 많은 인간에 의해 왜곡된 개념은 없을 것이다. 대중문화는 사랑을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실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이해하도록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에 대한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접근 방식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성경 예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는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화,이삭의 질문: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성경에서 어린양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창 22:7)라고 이삭이 질문하는 장면에서다. 아주 흥미롭게도 성경의 이후 기록은 이 질문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답한다. 구약성경의 나머지 38권은 점점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점진적으로 이삭의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유월절 의식부터 양치기였던 다윗의 초기 직업과 그 이후로 이어지는 일을 통해 전체 내용은 이삭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볼 수 있는 수많은 메시아 예언으로 가득 차 있다. 이윽고 신약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나타나셔서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사역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목숨을 희생하심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진다. 

 

수,죽음의 문제

사람들은 종종 “죽음도 삶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죽음은 삶과 반대이며,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 죽음은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할 필요가 없었던, 의도치 않은 외부의 침입자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죽음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집단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처럼, 죽음에 직면할 때면 우리의 마음은 그것에 여전히 강하게 저항한다. 

<교훈>

죽음은 당연한 순리가 아니며 생명이신 창조주에게서 단절된 고통스런 대가이다. 죄에 빠진 인류가 당면한 죽음과 그 해결책은 예언의 중요한 초점이다.

 

목,뱀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이시며, 마귀도 항상 마귀이다. 사탄은 수천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수천 년간 이어진 타락한 인류 역사와 요한계시록에 그려진 예언의 각본을 종합해 보면 사탄은 에덴에서 사용했던 전략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와 분별력을 약속하셨으며(약 1:5), 우리가 성경 말씀의 확신으로 무장한다면 마귀의 거짓말에 속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고,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 즉 대다수가 그렇게 속게 될 것이다. 

 

금,더 깊은 연구를 위해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들었던 말을 또 듣는 것에 지쳤다고 불평한다. 우리의 독특한 예언 기별이 공개적으로 선포될 때, 우리는 때로 이미 들었기 때문에 새롭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별이 변함없이 일관적이라는 사실이 그것이 단순하거나 도전적이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무한한 하나님의 마음에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지식을 공부하다 보면,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주제가 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욕망에 속아 길을 잃지 않고, 역사적 신앙 위에 굳게 서게 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교과 본문 중에서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이시며

마귀도 항상 마귀이다.

 

사탄이 항상성을 잃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다행한 일일지 모른다.

그의 목표과 태도가 일정하다는 것은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는 또한 

교묘하고 교활한 수만가지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 함정.

 

말씀과 가까이 하지 않으면, 

항상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순간 헷갈릴 수가 있는 것이다. 

 

말씀의 본질, 

예언의 본질,

역사를 이해하는 분별력과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늘 말씀에 가깝고 

아버지께 가깝기를 원합니다.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세요. 

가족 동행들 동료들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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